스피츠의 밤 한숨

앨범 전체가, 아니 내놓은 앨범이 몽땅, 죄다 비슷비슷한, 거기서 거기인 음악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그 동질함이 감상을 아주 평안하게 해주는 것이 묘미인 스피츠.

소박하게 경쾌한 이 가락,
어딘가 쇳소리 나는 가녀린 목소리,
아기자기한 듯 하면서 대담하달까 뻔뻔하달까 싶은 가사

運命の人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노트

네이버에서 우연히 봤다. 공지영 소설의 제목인 듯.

네가 어떤 삶을, 에서 "너"는 읽는 주체인 나(읽는 주체인 다수)라고 생각할 때, 그런 나를 응원하는 너("나")는 누구일까.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나로서는 이런 고민을, 고민을 하는 나를 응원하는 너에 대해서, 그런 응원을, 그런 응원을 하는 자신을 저렇게 확고하게 내려놓는 것에 대해서 감탄하고 만다. 응원하는 당신이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말?

응원의 전제가 되는 "삶"은 "어떤"이라는 관형사를 통해 한정되는 대신 부정형의 느슨한 외연을 갖게 되는 것 같지만, 실은 응원한다는 타자의 행위를 통해 미묘하게 한정되는 양상을 띠게 된다. 응원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무엇을, 왜 응원하나. "어떤 삶"이든 응원한다는 말은 그 응원의 대상이 되는 삶이 일반적으로 응원하게 되는 삶과 다른, 그 일반적인 응원의 대상을 긍정적이라고 볼 때 부정적인 성질의 것일 가능성을 부여한다. 아니, 저런 종류의 선언으로 응원하게 되는 삶은 부정적인 성질의 것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느낌인데 그렇다면 응원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된다.

물론 여기서 네가 응원하는 것은 나의 "어떤 삶"이 아니라 "나", 그 자신이다. 그렇다면 어떤 삶과 나는 별개의 존재인가? 나는 내가 사는 삶과 배타적으로 실재하는가? 내가 나이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혹은 이러이러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나인 것이 아니라 나는 내가 사는 삶과 전혀 다른 종류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아니, 응원을 해준다는데 왠 트집은 잡고 난리야.

우연히 어떤 소설의 제목이 되어서 내 눈을 사로잡았을 뿐인 일상적인 말. 저 부정과 긍정이 뒤섞인 말이 청자에게 애정어린 긍정을 전달함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데, 저런 일상적인 말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가끔 언어라는 것은 참 희한하구나 싶었을 뿐이고. 나의 "어떤 삶"이 트집잡는 것을 천성으로 만들고 있을 뿐이고.

트집이라기도 뭣하고 그저 읽은 순간 응원하는 너는 누구인지 왜 응원을 하는 건지가 궁금했다. 비밀은 소설 속에 있나.


밤과 맥주와 의식의 흐름 한숨

건물을 나서면 열걸음도 채 안 가서 커다란 사거리. 평생을 도시에서 살았지만 집도 학교도 번화가와는 거리가 먼 곳에 있어서 (물론 학교 들어가는 길은 8차선 도로였지만) 평생 이런 곳과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대도시의 번화가이나 아무도 살고 싶어하지는 않는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 한다는 것은 이런 것.

8번가를 따라 내려가는 대신 34번가로 들어서는 왼쪽 신호등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고개를 들면 못생겼으나 지형물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인다. 맑은 날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흐린 날은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때로는 상층부를 안개 속에 감춘 채로 그 곳에 삐죽하니 솟아있다. 자주 봐도 조금도 예뻐 보이지는 않지만 언젠가 학교 가는 풍경 속에 저 못생긴 건물이 보이지 않으면 아쉬워지는 날이 오겠지 하고 생각한다.

나는 조금 성장했을까. 시간을 물 흐르듯이 흘러서 곧 여기서 살기 시작한 날짜와 겹쳐지는 날짜가 돌아올테고 나는 겹쳐진 시간위를 걸으며 또다시 조바심을 내게 될텐데. 어느샌가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해버리게 된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생각하며 현재의 나를 지워버리는 나날을 반복한다. 그것은 조금도 행복하지 않은 현재의 시간. 걷고 가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약간 축축하고 조금은 기분좋게 차가운 바람 속에 파묻히는, 그건 그것대로 좋은 순간인데도.

스스로의 박약함에 치를 떨며 총총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목요일의 하교시간. 강의실을 나서는 순간 [스스로의 박약함에 치를 떠는 나]까지도 오그라들게 싫어서 빛의 속도로 그 모든 것에서 멀어지기 위해 걷고 또 걷기. 자신의 박식함에 무한한 자긍심을 가진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이 매력적인 교수님은 말 없는 조그마한, 가끔 입을 열면 뭔가 무해하게 무식한 외마디를 내뱉는 동양인 여자애(로밖에 보이지 않겠지)가 본인에게 매료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겠지, 젠장.


끊임없이 좌절하고 그런데 또 그다지 좌절하고 있지 않기도 하고 그런 삶.

본인이 좌절을 하건 말건 제발 한 시간만, 시간을 멈춰놓고 리딩을 하던지 잠을 자던지 할 시간 딱 한 시간만 준다면 메피스토필레스와 당장 계약하겠어 라고 생각하건 말건 착실하게 흘러가는 시간.

물론 실제로 메피스토필레스와 계약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 시간 따위와 영혼-그게 뭔진 잘 몰라도-을 바꾸지는 않을 거임. 흥. (어쩌라고-)

간만에 맥주가 들어가니 이 모양인가 봄(봄!).

발제와 발제와 페이퍼가 굽이굽이 나를 기다리는 밤.


눈치챘어? 눈치챘어? 명사로 끝나는 문장 잇기- 라든가.

별 의미도 없는 것에 어쩐지 집착하는 그런 놀이, 저기 보이는 전봇대까지는 눈을 감고 걷겠어, 라든가.

 
밤과 맥주와 더 이상은 찌꺼기도 안 남은 것 같은 자긍심, 혹은 자기 비하, 라기보다는 자기 혐오로 가득 찬 마음 가짐이라면 울프가 부럽지 않은 의식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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